2026-06-23 · 정은서 (수석연구원)

디지털 트윈(Digital Twin)이란 무엇인가요? 가상 환자로 임상시험을 시뮬레이션하는 인실리코(In Silico) 시대 완전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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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트윈은 실제 환자나 장기를 컴퓨터 안에 똑같이 복제한 가상 모델입니다. 이 가상 환자에게 먼저 약을 투여해 반응을 예측하면, 임상시험에 필요한 위약군 환자 수를 20~50%까지 줄일 수 있습니다. 언런AI(Unlearn.AI)의 디지털 트윈은 2022년 유럽의약품청(EMA)으로부터 위약군 축소 방법론을 공식 인정받았고, 2026년 현재 알츠하이머·파킨슨·ALS 임상에서 합성 대조군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인실리코(in silico) 임상시험은 동물실험과 사람 임상의 비효율을 동시에 줄이는 차세대 의술 트렌드로 자리잡는 중입니다.

목차

현장에서 본 임상시험의 진짜 병목

몇 해 전 한 희귀질환 신약의 2상 모니터링 자료를 검토하던 때가 기억납니다. 약효 데이터는 나쁘지 않았는데, 정작 발목을 잡은 건 환자 모집이었습니다. 전국에서 대상 환자가 워낙 적다 보니, 위약군(placebo, 가짜약을 받는 비교 집단)에 배정될 자리를 채우는 데만 1년 넘게 걸렸습니다. 그 사이 일부 참가자는 "왜 나는 진짜 약이 아니라 가짜약을 받느냐"며 중도 이탈했고요.

이건 특수한 사례가 아닙니다. 전 세계 임상시험의 약 90%가 모집 일정을 못 맞춥니다. 2024년 상반기에는 2상 시험의 32%가 조기 종료됐는데, 이는 팬데믹 이전보다 56% 늘어난 수치입니다(IntuitionLabs 집계). 환자를 절반은 진짜 약, 절반은 위약으로 나누는 무작위 대조시험(RCT)은 근대 의학의 황금 표준이지만, 바로 그 "절반을 위약에 쓴다"는 구조가 시간·비용·윤리 부담을 동시에 키웁니다.

그래서 연구자들이 던진 질문은 단순했습니다. 위약을 받을 환자의 반응을, 굳이 진짜 사람에게 위약을 주지 않고 컴퓨터로 미리 알 수는 없을까. 이 물음에서 출발한 것이 바로 디지털 트윈과 인실리코(in silico) 임상시험입니다. 'in silico'는 실리콘 칩, 즉 컴퓨터 안에서 진행한다는 뜻으로, 시험관 안의 'in vitro', 생체 안의 'in vivo'에 빗댄 표현인데요. 약을 사람 몸이 아니라 가상 환자에게 먼저 투여해 본다는 발상입니다.

디지털 트윈이란 무엇인가

한 줄로 말하면, 디지털 트윈은 실제 대상을 데이터로 똑같이 복제한 살아 있는 가상 모델입니다.

원래 이 개념은 항공·제조업에서 왔습니다. 제트엔진에 센서를 잔뜩 붙여 그 데이터로 컴퓨터 속 쌍둥이 엔진을 돌리고, 실제 고장이 나기 전에 가상 엔진에서 미리 시뮬레이션하는 식이죠. 의료 디지털 트윈은 이 아이디어를 사람에게 옮겨온 것입니다. 환자의 나이, 성별, 동반질환, 바이오마커, 영상, 유전체 데이터까지 — 연구자들 표현으로는 "유전체(genome)에서 노출체(exposome)까지" — 폭넓은 정보를 학습한 AI가, 그 환자가 앞으로 어떻게 병이 진행될지를 예측하는 가상의 분신을 만들어 냅니다.

여기서 핵심 기술이 머신러닝 기반의 예후 점수(prognostic score)입니다. 수천 명의 과거 임상 데이터로 AI 모델을 학습시키면, 새 참가자가 첫 방문에서 기초 데이터를 입력하는 순간 그 사람만의 디지털 트윈이 생성됩니다. 이 트윈은 "이 환자가 만약 치료를 안 받고 표준 경과만 따랐다면 6개월 뒤 어떤 상태일까"를 숫자로 내놓습니다. 미국 스타트업 언런AI(Unlearn.AI)는 이 절차를 PROCOVA(예후 공변량 보정, Prognostic Covariate Adjustment)라는 통계 기법으로 정식화했는데요. 디지털 트윈이 예측한 값을 임상 분석에 공변량으로 끼워 넣어, 1종 오류(없는 효과를 있다고 착각하는 오류)를 통제하면서도 필요한 환자 수를 줄이는 방식입니다.

오해하기 쉬운 지점 하나. 디지털 트윈은 환자를 통째로 가짜로 지어내는 게 아닙니다. 실제 참가자는 그대로 모집하되, 각 참가자에게 "있을 법한 미래"를 그려 주는 보조 정보를 더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완전한 가공 데이터로 사람을 대체하는 합성 데이터(synthetic data)와는 결이 조금 다릅니다.

가상 위약군: 환자를 두 번 살리는 기술

기존 방식에서는 신약 효과를 증명하려면 반드시 같은 수의 위약군이 필요했습니다. 새로운 방식은 이 위약군의 상당 부분을 디지털 트윈이 만든 가상 대조군(virtual control arm)으로 대체합니다. 결과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언런AI의 분석에 따르면 디지털 트윈을 쓰면 통계적 검정력을 유지하면서도 등록 환자 수를 20~50% 줄일 수 있습니다. 자사 솔루션인 트윈RCT(TwinRCT)는 위약군 규모를 최대 35%까지 축소하는데, 이는 그만큼 더 많은 참가자에게 가짜약 대신 실제 신약을 받을 기회를 준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환자를 두 번 살린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닌 이유죠.

실제 검증 사례도 쌓이고 있습니다. 페시(Phesi)는 만성 이식편대숙주병(cGvHD) 임상에서 2,000명이 넘는 가상 환자로 디지털 트윈 표준치료군을 구축했고, 6개월 객관적 반응률을 52.7%로 예측했습니다. 이는 역사적으로 알려진 50~55% 범위와 거의 일치했고, 연구진은 이 디지털 트윈 대조군이 "실제 대조군을 대체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결론지었습니다(Nature, 2024). 존스홉킨스의 2026년 심장 연구에서는 디지털 심장 모델로 심실빈맥 절제술을 안내했더니 성공률이 통상 60% 수준에서 80%로 올랐고, FDA는 이를 10명 규모 파일럿에 허용했습니다.

규제 인정도 한 걸음씩 나아가는 중입니다. 2022년 EMA는 PROCOVA를 연속형 평가변수를 가진 2·3상 시험의 1차 분석에 쓸 수 있는 "허용 가능한 통계 접근법"으로 자격 인정(qualification opinion)했습니다. 머신러닝 기반 표본 축소 방법을 규제기관이 공식 지지한 첫 사례였습니다. 이후 미국 FDA 의약품평가연구센터(CDER)도 PROCOVA가 현행 가이드라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며 EMA와 의견을 같이한다고 회신했습니다.

구분전통적 무작위 대조시험(RCT)디지털 트윈 기반 인실리코 임상
위약군실제 환자 절반을 위약에 배정가상 대조군이 상당 부분 대체
표본 크기큰 규모 필요20\~50% 축소 가능
모집 기간길고 지연 잦음단축, 희귀질환에 특히 유리
윤리 부담위약 노출 환자 다수실제 약 받을 기회 확대

장기 디지털 트윈: 심장부터 가상 인체까지

디지털 트윈은 환자 개인뿐 아니라 장기 단위로도 만들어집니다. 가장 앞서간 사례가 다쏘시스템(Dassault Systèmes)이 2014년 시작한 리빙하트 프로젝트(Living Heart Project)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전 세계 연구자들의 데이터를 모아 사람 심장의 검증된 가상 쌍둥이를 만들었습니다. MRI·CT 영상으로 해부학적으로 정확한 심장 형상을 빚어내고, 거기에 혈류와 압력의 물리학, 즉 혈류역학 계산 모델을 더해 심장이 실제로 어떻게 뛰는지를 컴퓨터 안에서 재현하는데요. 약물이 심장에 미치는 영향을 가상으로 실험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프로젝트의 공동 책임자가 FDA였다는 사실입니다. 2024년 8월 FDA는 리빙하트 프로젝트 결과를 발표하며 인실리코 임상시험에 대한 첫 FDA 주도 가이드라인을 내놨습니다.

심장에서 출발한 모델은 이제 폐, 간, 뇌, 눈, 장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각 장기 트윈이 레고처럼 맞물려 하나의 통합된 가상 인체(virtual human)를 이루는 것이 목표인데요. 산업계도 빠르게 합류했습니다. 필립스, 지멘스 헬시니어스가 심장 디지털 트윈으로 심장 의료기기 설계 속도를 끌어올리고 있고, 2025년 9월에는 지멘스 헬시니어스가 메이오클리닉과 손잡고 심혈관 진료용 AI 강화 디지털 트윈을 개발하기로 했습니다.

2025년 1월 FDA는 의료기기와 임상시험의 규제 제출 자료에 디지털 트윈 시뮬레이션을 적극 쓰도록 권장하는 초안 가이던스를 발표했습니다. 시뮬레이션을 안전성·유효성 평가의 정당한 도구로 인정한 것입니다. 이어 2026년 1월에는 FDA와 EMA가 공동으로 '좋은 AI 활용의 기본 원칙(Guiding Principles of Good AI Practice)'을 내놓으며 보조를 맞췄습니다.

인실리코 임상시험을 현장에 적용하는 4단계

디지털 트윈을 실제 임상 설계에 어떻게 녹이는지, 초보자도 흐름을 따라갈 수 있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1단계 — 과거 데이터로 모델 학습. 같은 질환의 수천 명 과거 임상·실사용 데이터(RWD)를 모아 머신러닝 모델을 훈련시키고 검증합니다. 데이터가 풍부하고 질환의 자연 경과가 잘 알려진 영역일수록 트윈의 예측이 정확해집니다. 알츠하이머·파킨슨 같은 신경질환이 초기 대상으로 선택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2단계 — 참가자별 디지털 트윈 생성. 새 참가자가 첫 방문에서 나이·바이오마커·영상 등 기초 데이터를 제공하면, 학습된 모델이 그 사람만의 트윈을 만들어 "치료를 안 받았을 때의 예상 경과"를 산출합니다.

3단계 — 예후 점수를 분석에 반영. 트윈이 내놓은 예후 점수를 PROCOVA 같은 통계 프레임에 공변량으로 넣습니다. 이렇게 하면 같은 검정력을 더 적은 환자로 확보할 수 있고, 위약군 규모를 줄이는 근거가 됩니다.

4단계 — 규제기관과 사전 협의. 시작 전에 EMA 자격 인정 절차나 FDA의 2025년 AI 신뢰성 프레임워크(7단계 위험 기반 자격 절차)를 따라 방법론을 검토받습니다. 이 사전 합의가 빠지면 아무리 좋은 데이터라도 허가 단계에서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현실적인 조언을 덧붙이자면, 디지털 트윈은 위약군을 '완전히 없애는' 도구가 아니라 '줄이는' 도구로 접근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2026년 현재 FDA는 가상 대조군만으로 진행하는 허가용 임상은 아직 승인하지 않았고, 대부분은 실제 위약군을 일부 남긴 하이브리드 형태로 설계됩니다.

한계와 규제, 그리고 한국의 움직임

장점이 분명한 만큼 한계도 솔직히 짚어야 합니다. 디지털 트윈의 예측은 학습 데이터의 질에 절대적으로 좌우됩니다. 과거 임상에서 특정 인종이 빠져 있었다면 트윈도 그 편향을 그대로 물려받습니다. 실제로 15년간 종양 임상의 42%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48%가 히스패닉 환자를 충분히 포함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있는데요. 이런 데이터로 학습한 트윈은 소외 집단의 반응을 잘못 예측할 위험이 있습니다.

규제도 아직 정비 중입니다. EMA는 공식 자격 인정 경로를 갖췄지만, 미국은 2026년 기준 동등한 정식 프로그램이 없고 디지털 트윈 영역이 "사실상 규제 공백"에 가깝다고 업계는 평가합니다. 그만큼 검증과 투명성 확보가 현장의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국내에서는 신약 임상의 가상 대조군보다, 생산 공정의 디지털 트윈이 먼저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종근당이 업계 최초로 '메타버스 팩토리'를 구축해 실제 공장과 동일한 가상 공장을 구현했고, 삼성바이오로직스는 5공장에 디지털 트윈 기반으로 최적 생산 시나리오를 계획하는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대웅은 2025년 '디지털 트윈 기반 바이오의약품 차세대 제조공정 기술 개발'이 국책 과제로 선정돼, 세포 배양부터 정제까지 전 과정을 통합한 디지털 트윈을 구축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글로벌에서는 다케다제약이 신약 개발 프로세스에 디지털 트윈을 도입해 기간과 비용을 단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요.

시장 전망도 우상향입니다. 인실리코 신약 발견 시장은 2026년 약 4억 9,780만 달러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됩니다. 전통적인 실험 중심 연구에서 계산 기반 연구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흐름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디지털 트윈이 사람 임상을 완전히 대체하는 날은 아직 멀었고, 가까운 미래의 그림은 "사람 임상을 더 작고 빠르고 윤리적으로 만드는 보조 엔진"에 가깝습니다.

FAQ

디지털 트윈으로 만든 임상 결과를 믿어도 되나요? 정확도는 어느 정도인가요?

질환과 데이터의 질에 따라 다릅니다. 만성 이식편대숙주병 사례에서는 디지털 트윈이 예측한 6개월 반응률(52.7%)이 역사적 실측치(50~55%)와 거의 일치했습니다. 다만 학습 데이터가 부족하거나 편향된 영역에서는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어, 현재는 실제 위약군을 일부 남긴 하이브리드 설계가 표준입니다.

초보 연구자도 디지털 트윈 임상을 설계할 수 있나요? 난이도가 높지 않나요?

방법론 자체는 통계와 머신러닝 전문성이 필요해 진입 장벽이 있습니다. 다만 언런AI의 PROCOVA처럼 정식화된 프레임워크와 EMA·FDA의 자격 인정 절차가 마련돼 있어, 처음부터 모든 걸 직접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검증된 모델을 가져다 쓰고 규제기관과 사전 협의하는 방식이 현실적입니다.

상업적 신약 허가에 디지털 트윈 데이터를 쓸 수 있나요?

부분적으로 가능합니다. EMA는 2022년 PROCOVA를 2·3상 1차 분석의 허용 가능한 통계 접근법으로 인정했고, FDA도 같은 의견을 밝혔습니다. 다만 2026년 현재 가상 대조군만으로 진행하는 허가용 임상은 아직 승인된 적이 없습니다.

기존 임상시험과 비교해 시간·비용을 얼마나 줄일 수 있나요?

디지털 트윈을 쓰면 검정력을 유지하면서 등록 환자 수를 20~50% 줄일 수 있고, 위약군은 최대 35%까지 축소됩니다. 환자 모집이 어려운 희귀질환에서 특히 효과가 큽니다. 표본이 줄면 모집 기간과 비용도 함께 줄어듭니다.

디지털 트윈과 합성 데이터, 오가노이드는 어떻게 다른가요?

디지털 트윈은 실제 환자를 그대로 모집하되 각자의 '예상 미래'를 더해 주는 가상 분신입니다. 합성 데이터는 사람을 완전히 가공 데이터로 대체하는 쪽에 가깝고, 오가노이드는 실제 세포로 배양한 미니 장기로 약물을 시험하는 물리적 모델입니다. 셋은 경쟁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는 도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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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논문